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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1월 15, 2004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산다는 것은 뭘까?
산다는 것은...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내가 생겨났고, 나는 10개월동안 어머니 자궁속에서 보낸 뒤 에 이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태어났을 당시를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정확하게 보고,듣고,냄새를 맡고,느끼고, 말을 한다는 것..은 3살 무렵이다
그 전에는 내가 살아도 산것이 아니였다. 나는 숨만 쉬는 인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나의 환경에 반응을 하면서 그리고 내 자신을 느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몇십년이 지나면, 혹은 운이 안좋으면 몇년이 지나면
나는 이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죽는 것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정말 슬픈일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여서...
세상을 모르는 나는 다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모르겠다....

요즘에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든다.
인생무상이라고... 인간은 자연앞에서 결국...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거 같다.
그냥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인데...
금, 은, 보화...그런거 가져가지도 못하는데...
결국..흙으로 돌아갈 뿐인데...
혹자는 인생에 참 의미를 아직 모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나에게 있어 인생은....참다운 의미를 찾을 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나는 인생이 멋없고 따분하고 재미없고, 외로움의 연속이다.
그렇게 때문에...그다지 살아가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할 수 있고, 슬픔이라는 감정도 기쁨에 지배당할 수 있겠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슬픔이라는 세력이 더 큰거 같다.
인생을 기쁘게 살아가고 싶어도,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든것이다.
어른이 되면 인생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아니다..어른이 한번 되어봐...그럼 어렸을 때가 훨씬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그래서...어른들이 동화를 만드는 것인가..
인생은 결코 재미가 없기 때문에, 동화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서
자기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아...인생은 따분하다.
인생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두가지의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밤에도 잠도 못자고 일명 불면증에 걸려서..허기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것이다. 잠만 자면서,,,죽는 것을 꿈꾸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인생에 대한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둘 중의 하나의 신체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하지도 않고, 별다른 재능도 없는 나...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산다는 것은...아무래도 죽을 때 까지 풀수없는 숙제일 것이다.


답변 Re: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러한 질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쩌면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될 수 있고 또 어쩜 쓸데없다고도 생각될 수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하는 판단이 가능한 것은 바쁜 세상에 답도 없다고 생각되는 것에 생각한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어지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그러한 질문의 답변의 실제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의 기본적인 납득이 강요되어지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것은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불가지적인 측면이라고 하는 즉 그 답변되어지는 것이 사실로서의 실제를 가지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때문에 어렵다는 것과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는 가운데서 오히려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또한 잊혀져가는 잊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죄된 인생의 통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물학적인 출생..

그것과 우리 인생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과 그 가운데의 삶이라고 하는 것, 그 사실이라고 하는 실제를 말할 수 없다는 통념이 있지만 그러한 것만이 있어야 한다는 그러한 생각도 역시 부정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에서도 확실성의 여부라는 것에 인식과 그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는 그 자기 정체성의 실제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대하여서 성경은 바다도 자기 안에 지혜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하늘도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음을 욥이 말한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 생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메바와 같은 미생물의 진화라는 개념도 역시 그 자체적 실제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하늘아래의 판단들이라고 하는 것.. 그 보편이라는 세계도 역시 지혜의 실존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님께서 삶을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의 삶과 실제의 판단에서 회의를 가진다는 것은 이미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어쩌면, 죽는 것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을것 같다."라고 언급하신 것을 기억하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행하는 형상의 모습 그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인해서 그러한 것을 부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순종하려고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부정되어진 스스로의 모습..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나의 실존.. 내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라는 것일 때에 내 삶의 의미는 하나님께부터 찾는 것이 합당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러한 자의적 느낌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실제적 판단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뜻하심이 내 삶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비롯 주관이라는 판단이면서도 믿음으로 실제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믿의 분량적 측면에서 주어지는 개인적인 소명의식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그러한 규범적 모델을 말할 수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일반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통념이라고 하는 것이 처세술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러한 기준들도 각기 주관의 객관화적인 측면의 한 표현일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본다고 하면 믿음으로 행한다는 그러한 가운데서 주의 말씀하심안에서의 자유로움의 실제를 말한다는 그러한 점까지 규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은 믿음의 분량의 차이라는 개념에서 교단이라는 종교적 종파가 생겨나는데 이러한 가운데서도 역시 주의 말씀안에서 믿음이 분량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의 실제도 말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둠이 좋겠습니다.

산다는 것의 정체성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서 찾을 수있으며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소명의식에서 산다는 것이 여러가지 개연성의 한 표현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적인 규정과 증거가 될 수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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