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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1월 13, 2004

자살 충동에 대하여서..

의욕 상실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나요?
정말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다면....
자살 하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자살 충동에 대하여서..

1. 성경적인 측면에서..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행하시는 분.. 그 분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하려고 하는 그 노력이라고 함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것이고 또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함이 옳은 것이 성경의 증거라고 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인 것같습니다. 학교 공부 또 사회에 나오면 살기 위한 전쟁, 다시 인생의 펼쳐보기도 전에 접어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그러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한 판단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도 그 가능성이 있는 그러한 판단이 항상 실재적인 실제적인 판단이 아니라고 함도 생각함이 인생에 있어서 지혜가 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 일반적인 철학에서의 도피..

일반 철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언어적으로나 어떤 것을 규정하는 것이 자유임을 말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곳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들이나 또는 내 자신이 내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자유라는 모순적인 극단적인 판단이 합리성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설득력이라는 것은 있지만 그러한 전제나 판단들이 진짜 나의 실존을 내 존재를 맡길만한 사실로서 확실한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면 모든 것이 다 잘 모르겠다가 정답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다 상대적인데 무엇을 받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상대적인 것을 통해서도 절대적으로 말씀하신다고 할 때에...

상대적으로 부인하고 싶고 비난하고 싶은 나의 인생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중요한 실재이며 하나님이 기뻐보시는 그러한 자라는 것을 믿음이 진정한 실제적인 판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거지 나사로도 있습니다. 그는 얼마나 비참했던지.. 그래도 세상적으로 평가절하되어질 수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3.'그렇게까지 하면서 살면 뭐하노?'라는 말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면 뭐하노?'라는 말을 사람들이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러한 말이 진정한 실제로 볼 때에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말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요즘에는 실제적이지 못한 말들이면서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말들로 나타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문제를 풀기 전에 그 문제가 잘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알아보고 문제를 푸는 것이 기본이 되지 않겠습니다. 같은 인간끼리 인간을 평가절하하며 죽음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기본적인 인간 사상에서도 성립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말하는 '살아서 뭐할래'하면서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나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상실하는 말입니다. 때로는 너무 착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남감한 일이 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를 먼저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입장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자살종용이라고 하는 말에 전적 수용할 필요는 없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적이 것으로 볼 때에 '그렇게 살고 싶나'라는 말의 판단들을 무수히 제시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러한 것은 전부 상대적인 것으로써, 진짜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과 비교되어질 수 없다고 봅니다. 절대자께서 주시고 판단하심의 실재로서 우리의 삶과 일상적인 생명과 영원한 생명은 그러한 비난의 질문이라고 함의 판단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절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절대는 상대적인 것의 반대가 아니라 절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자기 주권적으로 상대적인 것의 관계를 설정해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자의 재가가 있는 것을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속되게 표현해서 '오바'가 아닙니까.. 월권이라는 뜻입니다.

말을 맺으면서..

자살충동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현실적인 판단과 개연적인 판단에 우리의 존재를 내 맡겨라는 것으로 마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그러한 중심을 가지지만 그러한 '스스로'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신다는 점에서 그 '스스로'의 뜻하심에 재가적 차원에서 스스로라는 진정한 실재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살기 어렵고 주위에서 '니 그렇게 초라하게 살려고 하나, 한심하다'라는 판단과 내가 보아도 그러한 판단이 든다고 하여도 판단의 주체로서 하나님을 기억할 때에 내 판단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성도 살아가는 성도는 또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로서 합당한 것입니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주께 감사해보세요..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초라함이라고 하는 것도 상대적이기에 절대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는 것과 더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며 위할 수 있는 넉넉함에서 또한 작지만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삶에 주의 사랑과 평안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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