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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월 20, 2005

왜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토요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질문입니다]왜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토요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전 장로교 청년입니다. 간단히 왜 우리는 지금의 주일을 지키고 있나요? 4계명에 하나님께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는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의 주일을 지키고 있나요?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예수님의 부활에 관련해서 많이들 말씀해주시더군요 하지만 의문은 쉽게 풀리지가 않는군요 누구 잘알고 계신분 있으면 도움바랍니다 (성경구절,변경시기,배경 등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God love all of you..


[답변]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안식교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것이 사활이 걸린 것과 같이 생각되어질 수 있고 그러한 사활적인 합리성의 충족성이라고 하는 것을 힘쓰는 가운데 그러한 인식들에 대하여서 당위성을 부여해 주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그러한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이 됩니다.

질문하신 분의 입장에서는 장로교인이라고 하셨는데 장로교에서는 부활의 실제적 의미에서 주일을 지킨다는 말을 함에 있어서 합리적 충족성을 못느끼는 입장이군요.. 그리고 그러한 합리적 충족성이라고 하는 것을 좀더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고 그러한 것에 안식교인들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도 비록 개연적이면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한 입장을 취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비밀 고민 상담에서 글을 쓰면서 합리성의 충족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실제의식을 가지는 것과 기독교의 실제의식은 다르다는 점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무엇이 실재인가 그리고 그러한 실재에서 파생되어질 수 있는 정당함에서 사실을 말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춘 실제인가 그것을 먼저 분별함이 님의 상대적 합리성의 충족성에서 비롯단 당위성에서의 납득을 취하는 입장을 앞선다고 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의 실재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막연한 상대적 합리성으로부터 성경의 언급이라고 하는 일차적 자료들의 조합이라고 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입장에서 그 완성을 말한다면 합리성 자체의 자기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가정이 실제인 것같이 인위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실제는 하나님의 자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의 자기 정당함을 절대로 취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여러가지 개연성의 합리성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즉 절대의 자기 정당함을 가지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보편 상대적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성경의 일차적 자료의 조합과 관계성이라고 하는 것에서는 그 자체만으로 사실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이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절대 정당함으로 절대의 능력으로 상대적인 표현을 하신다면 그것은 그 상대적인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판단을 본질적으로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의 증거의 기본적인 실제의식의 중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 주권적 정당함으로 우리의 허물을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신 것에서 실존의 정당함이 실제적으로 규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실존의 정당한 이유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의롭다고 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하심에서 안식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안식이라는 시간의 보편성에서 그 질서적 개념의 토요일 보다도 더 실제의식을 가질 수 있고 다시 그 질서적 새로운 질서적 의식의 실제를 말할 때에는 주일이 진정한 안식의 실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러한 주님의 부활하심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여자적인 글자 그대로의 시간의 보편성에 따른 질서만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주님의 부활하심의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는 자들로서 소위 안식교의 가르침은 그 의로움의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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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논리적인가요.. 아닙니다.!!

[질문]휴...다들 첨에 겪는 고민 같습니다....답변좀 부탁드려요

한창..열시미 잘 믿으려하는중인 기독교인입니다. 우연히 찬양을 찾던중. 진화론과 창조론이란 카페에 들어가게 돼었습니다. 거기서 창조론과 성경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려는 글들을 읽었고.. 심지어..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이 어떻게 아냐는 글까지 읽었답니다.T.T

저는..당연히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 글들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그 글에 반박할수 없는 제 무지가 너무 싫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잘 읽지 못했습니다.

물론 상대안하면 된다고 하시겠지만.. 제 성격상 그러질 못합니다.T.T 머라고 꼭 반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눈..--;;;; 오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며 마니 울었는데.. 그냥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비웃고 욕하는 그들... 근데 단 한마디도 할수 없는 나.... 그래서..여기 계신분들께 질문드립니다. 제 물음에 비교적 논리적인 답변좀 부탁드립니다.


1. 성경에 나온 사실들은 100프로 사실인가요???
저도 한때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나라의 단군설화처럼 이스라엘민족의 신화가 아닐까..... 왜냐면 제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읽어본 결과가 너무 이스라엘 민족 중심이었습니다. 아직 성경을 다 안읽어본터라 그러니 어이없는 질문이라도 이해해주세요^^;; 그냥..어느정도의 역사적 사실에 과장이 섞인건 아닌지...

2. 그 카페에서 말하길...
다윗과 솔로몬제국은 역사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과장된 얘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의 나이테가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가 일어난 시기보다 훨씬 오래된 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은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기록되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인간에 의해 기록되어진만큼.... 무언가 오류가 발견?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저를 잘 설명해주세요..^^;

3.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내용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가장 불만이 많은거 같습니다. 그들이 말하길.전지전능의 하나님이 자기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는단 이유로 지옥에 보내느냐는 겁니다. 저는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몰랐던.. 아주 오랜 시대의 선인들도 지옥에 가야하는건지??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님과 같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롭고 좋으신분인데..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말 지옥에 가는게 맞는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서요....

4.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것을 예언한 구절이...구약에 어디에 있을까요?? 메시야가 올것이라는 것은 예언되어있지만.. 그게 예수님이라는걸 어떻게 아냐고.....(제 생각이 절대 아닙니다..!!) 그냥 인간들이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고 싶어서 믿는게 아니냐고.... 이 질문에는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저한테 온 첫번? 시험 같습니다.T.T 왜 그런 이상한 사이트에는 들어가가지고... 저는 머리는 나쁜데..은근히 논리적이걸 따진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게되서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분이 함께하심이.... 근데 저 위에 의문점들을 논리적으로 따질수 없으니.. 너무 답답합니다. 물론 주님의 그 심오한 뜻을 논리적으로 설명할수 없다는건 잘 알지만.. 그냥 답답합니다.. 저에게 지혜로운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진화론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은 이미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논리적인 것같이 자기 기만적인 합리성일 뿐입니다. 진화론이라고 함과 창조론에 대한 것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진화론의 인식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이미 비판되어진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진화라는 개념과 창조라는 개념.. 이 둘은 공통적으로 역사라는 개념으로 증거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제적으로 판단하는가에 따라서 이미 그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적인 논리를 가지지 못함에 대하여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실제적인 논리라고 함을 말하지 못하는 기만적 합리성에서 전반적으로 부정함을 말합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사실들은 100% 사실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서..

이미 100%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이미 상대적인 판단으로서 사실적인 완성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되어야 할 것은 사실이라는 개념입니다. 무엇이 사실인가 그것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태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무엇이 객관이냐고 할 때에 진화론적 입장에서의 역사이해는 주관적 역사이해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사실은 인식적인 개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진정한 객관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인 사태라는 것으로 말할 때에 상대적인 사태이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 사태라는 실제의 확실성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즉 이것은 불가지론과 관련되어지는데 진화론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의 납득되어지는 승인되는 가운데서의 상대적 객관이라는 그러한 기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존의 절대자로부터 절대의 정당함을 가지고 그 사태의 실존을 말하기 때문에 절대자가 상대적인 사태의 형식으로도 절대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한 말씀하신다는 점에서 형태적인 측면에서의 상대적 객관이면서도 절대의 객관을 말할 수 있고 절대의 사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00%의 사실로 말한다는 상대적 기술의 완성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참된 사실로서의 증거임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다윗과 솔로몬제국은 역사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과장된 얘기라고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관적 이해 즉 시간이해에 있어서 현대적인 사상에서 입각하고 있고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종국적인 측면에서 즉 철학적 종말론에 입각한 가운데서 미래가 현재를 규정하는 형식으로써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목적적인 시간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합목적적인 측면 때문에 역사라는 것 특히 모세오경을 비롯하여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역사서에 나오는 다윗과 솔로몬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바벨론 포로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 나라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한 즉 정치적 용어로써 '크레덴다'적인 측면에서 그 나라의 당위성을 말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측면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이해에 있어서 미래가 현재와 과거의 실존을 규정할 수 있다는 그러한 전제적 이해라고 하는 것이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한 기준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이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시간관이라고 하는 것과 실재의식은 귀납적인 개념에서 실제규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가운데서의 실제의식을 말하며 그 정당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관과 인식이라고 함의 실존적 정당함의 시비가 모든 합리성의 논의를 앞선다는 개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잘못된 합리성의 귀결적 표현일 뿐입니다.

3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에 대한 반발에 대하여서..

사실 지옥이라고 함의 언어적 실체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하여서 그들은 또한 상대적 상상에 대한 것으로 자신들의 정당함 자신들의 존재의 개연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은 여자적 해석을 함에 있어서도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비합리성적인 불분명함까지도 실제적 증거로서 나타난다고 할 때에 여자적 분석이라고 함의 자리에 머물수밖에 없는 자들의 고민은 자신들의 정당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4.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것을 예언한 구절이...구약에 어디에 있을까요?? 메시야가 올것이라는 것은 예언되어있지만.. 그게 예수님이라는걸 어떻게 아냐고.....(제 생각이 절대 아닙니다..!!)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예언한 구절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을 묻는 것을 앞서는 것은 그 예언적 실존이라고 함을 분별할 수 있는 실제의식이 그들에게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먼저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합리적인 언급은 있지만 자존의 하나님의 절대 정당함에 따른 합리성에 비견되어질 절대의 정당함은 그들 상대적 실재분별함에 있어서는 없다는 것을 지적해두겠습니다.

즉 예언의 실존을 묻기 전에 예언의 실존을 분별할 수 있는 실제의식과 기준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기본적인 답변을 해두겠습니다.


이명신
단적으로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실제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서는 기회가 있다면 다시 논의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합리성.. 그 자체만을 생각하심에 힘들어하시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17: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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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연옥에 대한 소망에 대하여서..

[고민]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에 대한 고뇌..

저는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13년 정도 된 개신교 신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의문점에 대해 문의하고 싶어서 이곳에서 글을 남깁니다.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계신 독실한 크리스챤이거나, 목회에 관련된 분들께서는 부디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저는 현재 28살의 남자이고 아직 늦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중학교 때부터(그이전에는 성당에 다니기도 했죠)했습니다. 나름대로 학생회 시절에는 교회생활도 열씨미 했던 제가, 군대에 다녀오고나서는 신앙적으로 식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 2001년에 저의 할머니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죠. 군제대후 신앙적으로 식은 상태였지만, 조모의 죽음은 저에게 신앙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생전에 교회에 가자고 제가 말씀드리면 "마음으로만 믿는다"라고 하는, 카톨릭 교회에 다니신 적이 있는 분이셨고, 저는 할머니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확신이 안들었었죠.

여기서 저는, "생전에 일반사람들이 말하는 죄한번 제대로 짓지 않은, 죄가 있다면 자손들 사랑한 죄밖에 없는 할머니가, 과연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심한 고뇌를 하게 됐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태어날때부터"원죄"를 갖고, 예수를 통해서만이 이 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죠. 그런데,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기전까지는 이런 문제들이 나와는 관련이 없어서 "그냥 그러나보다"하고 생각하고 넘겼던 것이 점점 불합리하게 보이기 시작하게 되더군요. "과연 예수를 전혀 알 방법이 없는 오지의 미개인들과, 또 예수교가 전해지기 전의 우리 조상들도 다 지옥에 가야 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저 나름대로 "예수천당은 믿지만 불신지옥은 믿지 않는다"라는, 엄격한 기독교인이 봤을때는 다소 사이비같은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심한 고뇌를 하면서, 이곳저곳 목사님들에게 메일로 상담도 받아보고, 또 직접 대면해서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같은 기독교 장로회 목사님들에게 들은 답변도 의외로 그 내용은 목사님마다 다양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신앙적으로 무척 힘드신가 보군요. 중요한 것은 지금 고뇌하는것 보다는 열씨미 신앙생활하고 살아가는것이 고인의 뜻,그리고 주님의 뜻과 합치될 것이 아닐까요. 분명 할머니께서는 좋은 곳에 가셨을 것입니다"라고 하셨고, 또 어떤 목사님은 "기독교의 신앙은 천국과 지옥이 있을뿐, 중간은 없습니다.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들은 그 축복의 결정을 감사할 수 있을뿐, 안타깝지만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어쩔 수는 없는 것이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절대로 "천국과 지옥"만이 있다는 것일까요? 정말 모호하게, 어떤 목사님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해결할 수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고 하시며 여기에 대한 확답을 피하시기도 하고, 어떤 목사님은 단호하게 "천국과 지옥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하셔서, 저로써는 혼란스럽네요.

아니면 천주교의 연옥의 개념을 생각하는것이 합리적인 것일까요? 해석하기에 따라서 연옥도 지옥이라 할 수 있겠지만, 천주교쪽에서의 해석을 보면 예수를 모르더라도 대죄를 짓지 않는한 연옥에 가고, 연옥에서는 그래도 불의 연단을 통해 천국에 마땅한 영혼이 되면 결국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제가 어렸을때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할머니가, 정말 자식만을 아끼는데 평생을 바친 그분이 지옥에 가야만한다는 극단적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일수 없게 됐답니다.

.... 제 배경설명이 너무 장황했네요. 바라옵건데, 한국 기독교의 일반적인 교리로는 오로지 천국과 지옥만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믿을래야 믿을수가 없었던 오지의 주민들과 우리 조상들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다는 생각이 안드는 정말 좋은 사람들도 지옥에 가야만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한국 기독교의 일반적 교리로써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많은 가르침 바랍니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제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세요..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답변] 연옥에 대한 소망에 대하여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개신교 신자라고 말씀하심에 신실성을 받으면서.. 기독교 비판에 대한 입장에 대하여서도 재고할 필요 있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먼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하여서 그리고 그 사랑과 연민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세상에 착하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은 우리 기독교인들 보다도 일반인에게서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합니다. 그러한 선함의 비교에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과 결과가 상관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중심의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 하나님의 판단중심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을 먼저 분명히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자존의 절대자가 자신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고 인생을 만드시기를 기뻐하셨고 또한 구속하심에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자의 자기 절대 정당함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인 판단의 여지라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판단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와 실제를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자존의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것과 그 실제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크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주관적인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더 아름답고 그 사랑이 무한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한적인 개념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상대적인 무한적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의 무한과 비교되어질 수 있고 상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할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되어진 선의 상대적 차이라고 하는 개념에서의 죄악 문제는 중세적으로 부터 그리고 구교로부터 어거스틴의 사상적 입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은 죄라고 하는 것을 선의 결핍이라는 견해를 지지해왔습니다.

그러한 것은 구교에서 언급되어질 수 있고 그러한 기반에서 논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미종족의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경시되어지는 상대적 모순이라는 것에 상대적 답변이라고 하는 것의 완전성 상대적 충족성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절대 자존의 정당함에 따른 구속이라고 하는 것이 평가되어지거나 또는 의문시되어지는 가운데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무한이라는 개념에 정적인 의미로 정당함을 부여할 수 있다는 그러한 판단에서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가운데서는 결코 답변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절대 정당함에 따른 것으로서의 구원이라고 함을 믿을 때에는 상대적 완전의 합리성의 구축여부에 이미 실제적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적 합리성의 추구요구 자체가 이미 기각되어진 인식과 발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연옥의 소망에 대하여서..

이러한 자존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실재론적 입장에서의 정당함을 찾지 않는 구교적인 입장에서는 상대적 합리성의 추구라는 개념에 어느정도 답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연옥이라고 하는 개념을 성경에서 찾아낸 것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합리성에 대한 것은 여기서 전부 논한다는 개념은 적절하지 않고 메일로나 또는 저의 까페에서 아니면 여기 까페에서 달리 논의가 되어지면 그 때에 다시 재고할 수 있는 것으로 받음이 좋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윗의 경우..

다윗도 자신의 아들이 죽음을 놓고 이미 죽은줄 모르고 행하는 가운데서 참으로 그의 고통이 심하였지만 그의 아들이 죽었음을 알고 그의 금식하던 자리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과 같이 이제는 주님의 뜻하심 안에서 상대적인 이해의 충족성이라고 함의 실제를 말하지 않는 자리에 선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가운데서 다시 주의 뜻하심에 맡기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의 회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하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 목사님들의 견해는 그 신학과 정체성에서 이미 답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고 그러한 답변과는 달리 개인적인 입장이면서도 하나님의 절대 보편에 따른 합당함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증거의 한 표현으로써 이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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